며칠 전 숯내 게시판에 요상한 모기 한 마리 등장하여 회원님들을 혼란스럽게 했는데
이 모기란 놈 마치 요즘 썰렁한 토달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기라도 한 듯  고별사 한번 구슬프게 하더군요.
전 혹시나 모기의 고별사에 깊이 공감하는 회원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해봤는데요.
저의 노파심이겠죠?
그럼 지금부터 제가 쓴 춘천마라톤 풀코스 후기 읽으시면서 뒤숭숭한 세월 잠시 잊어 주시기 바랍니다.


  2011년 10월 23일. 드디어 춘마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첫 하프 때처럼 이번에도 긴장과 설렘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다가 두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5시 10분전에 맞춰 놓은 알람 소리에 깨어
부랴부랴 아침을 먹고 6시 10분에 춘천으로 출발....
춘천까지 거리도 멀고, 그래도 첫 풀코스인데 하면서 남편과 아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7시 반 도착을 기대했지만 춘천 시내가 많이 막혀 8시가 넘어서야 숯내마라톤 텐트를 찾았습니다

   준비운동은 출발선까지 걸으면서, 또 대기하면서 해도 충분했습니다. 제가 속한 G그룹은 30분이 지난 9시 반이
돼서야 출발했으니까요. 스타트를 하는데 어째 그리도 몸이 무겁고 머리가 멍하던지 유난히도 바빴던 10월의 일정으로
누적된 피로와 감기기운 탓이었던 것 같습니다.
10km 지점이 지났는데도 몸이 가뿐하게 느껴지질 않고 15km가 마치 하프 지점처럼, 하프 지점이 30km처럼 느껴지는...
컨디션이 내내 그렇게 좋질 않았습니다. 지난번 연습주로 뛰었던 평화마라톤은 의외로 35km 지점까지는 어렵지 않게
뛰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그래도 34km 정도까지는 4시간 40분 페메를 놓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달렸습니다.
G조의 4시간 40분 페메분들, 우렁찬 구령과 격려를 쉼 없이 하면서 달리는데,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생각하며 조금 앞서거나 조금 뒤쳐지거나 하면서 따라갔습니다.


  마지막 5km를 남겨둔 37km 지점부터는 제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사실 평화마라톤에서 37km 달린 것이 저의 풀코스 연습주로는 최장거리였었고
그 이상의 거리는 제가 처음 경험하는 것 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 일 텐데도 왜 그리도 당혹스럽던 지요.
35km까지는 자신의 체력으로 뛰지만 그 이후의 거리는 정신력으로 뛴다, 마의 벽이다 등등의 말은 종종 들어왔지만
그래도 5km쯤이야 했는데, 어느 지점부터인가 다리가 돌덩이처럼 무겁게 느껴지더니
현기증이 나고 자꾸 눈이 감기며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식수대마다 거르지 않고 물과 이온음료수를 마셨지만 체력이 완전이 바닥이 나 더 이상 걸을 수조차 없을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1km는 거리에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폼 나게 달려야지 했던 제 예상과는 다르게
그저 뛰는 건지 걷는 건지 어기적거리는 건지, 비몽사몽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아치모양의 골인 점을 통과하니 많은 사람들이 완주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는 얼굴들이 하나도 보이질 않고 방향감각도 없어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며 텐트가 있는 방향으로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길 저쪽에 강홍구님이 보이고, 그 다음 박승곤님과 박경순님이 보이더군요.
그런데 이 분들 표정이 모두 제가 완주한 것이 당연하다는 듯 축하한다는 말도 않고 기록부터 묻더군요.
전 5시간 안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있는데 5시간? 당연하지 않냐하는 이 분들의 표정에
하긴 풀 완주가 뭐 별건가 하는 기분이 들면서 그렇게 힘들어 했던 저 자신이 조금 허접하게 느껴졌습니다. 

    갑자기 남편이 조문을 가야할 일이 생겨 숯내 텐트에 들르자마자 바로 서울로 올라가는데,
차 안에서 남편이 대견함이나 축하의 말보다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합니다. 
“생각만 해도 내 무릎이 시큰거린다. 아니, 그렇게 뛰는 게 즐겁긴 해?”
아들 역시 “엄마 그러다 골병드는 거 아냐?“
골병? 글쎄 아직 골병들 정도로 뛰어보질 않아서......


   춘천을 다녀온 후 며칠간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후기를 써야한다는 의무감이 있을 뿐 왠지 별 의욕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작년 평화마라톤에서 첫 하프를 뛰고 나서 나름 후기를 진지하게 썼던 것과는 대조적이었습니다.
생애 최초로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고도 왜 이렇게 덤덤해 있는 것인지...
아마도 마라톤 클럽에 1년 10개월을 지내며 풀코스를 마치 일상사처럼 뛰는 회원님들을 늘 접하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42.195km라는 거리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심리적으로는 이미 풀코스를 몇 번 뛰고난 뒤였었나 봅니다.


   전 사실 풀코스 완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습니다. 건강을 위해 달리는 거라면
사람에 따라서는 자칫 무리가 될 수도 있는 풀코스를 꼭 뛰어야하는가 하는 생각이었죠.
더구나 마지막 코스에서는 고통까지 수반된다는데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할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전 역시 남들보다 한 템포 느린 것 같습니다.
첫 풀 완주의 감동은 서서히 찾아오더군요.
마지막 5~6km 구간에서 겪었던 고통이 왜 그리도 신비한, 그리운 추억으로 남는 건지요.
고통의 과정에서 잠시 무너졌던 저 자신의 모습이 문득 문득 떠오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라톤 풀코스의 진수는 마지막 5~7km구간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흔히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하는데, 똑같은 42.195km의 거리가 사람마다, 뛸 때마다 다르게 느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에 풀코스를 뛸 때는 또 어떤 상황을 직면하여 어떠한 내 모습을 보게 될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다음번에는 파워겔을 최소 두 개 준비하여 빈혈증세가 오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고통을 통해 성장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피할 수 있는 고통은 피해야겠죠? 

  그동안 저희 3인방이 첫 풀코스를 뛰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셨던 숯내회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왕초보시절 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주셨던 이종두님과 김진명님께 더욱 더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