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깁니다...

 

금요일(7/8) 오전 근무를 마치고 김포공항에서 티켓팅을 하는데 운좋게 3시 비행기 자리가 남아 있어

계획보다 2시간여 일찍 도착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웬걸 1시간 연착으로 희비 교차.

제주도착 후 평소 같았으면 차량을 렌탈하였을텐데 혼자라 아깝기도 하고 유유자적 여유있게 여행겸 직행버스로 출발.

종점이 숙소근처에 있어 차창밖으로 펼쳐진 경치를 구경하며 버스로 이동하길 잘했다고 내심 흐뭇합니다.

게다가 미리 예약해놓은 작은 게스트하우스가 가파도와 마라도가 보이는 바닷가쪽이라 조망이 훌륭하네요.

일이 술술 풀리는걸 보니 왠지 이번 대회는 행운이 따를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수영(3.8km 1:13:50) 모슬포 옆 운진항

 

전날 아침 방파제 안에서 수영 연습을 하였는데 생각보다 물이 잔잔하고 바닥이 보일정도로 깨끗하여

제주 성산 슈퍼맨대회 오조리포구를 생각나게 합니다.

본래 방파제 밖으로 도는 2회전으로 수영계획이 잡혔으나 밖은 파도가 높아 그런지 안쪽으로 3회전 하기로 결정했다네요.

개인적으로 항상 수영이 제일 힘들고 수영 후 사이클 초반까지 영향을 미치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수영을 하면서 편안함을 느끼고 끝나고 나도 사이클을 타는데 전혀 지장을 받지 않게 되었는데

 “이제야 수영 구력이 쌓여가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네요.

턴하는 지점마다 부표외 레인은 설치되지 않았는데 이게 오히려 선수들에게 분산효과를 주어서 그런지

몸싸움이 전혀 없었고 수영하는 동안 편안하게 나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었습니다.

수영을 나오면서도 예상기록(1:20:00)은 가능하리라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 호기록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이클(180.2km 6:11:54) 운진항-서귀포-성읍-중산간도로-돈내코-한림인근-영어마을-운진항

 

사실 제주대회의 참맛은 사이클이라 할 수 있죠. 남제주 일원을 일주하는데,

적당한 업다운힐, 바람, 경치... 게다가 1회전이니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환경이지요.

초반 서귀포까지 30여km가는 동안은 업다운힐의 반복이라 부담은 되었지마

이후는 몸도 풀리고 평지나 바닷가쪽이라 주변 경치도 감상하며

무리하지 않고 100km 지점에 설치된 스페셜푸드 공급 장소까지 마치게 됩니다.

 

이번 스페셜푸드에는 귤과 자두 외에 맨밥에 김을 말아 몇 개 넣었는데

빵을 먹을 때보다 짭짤해서 그런지 입맛도 당기고 왠지 후반부에 밥 힘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옵니다.

밥심으로 돈내코언덕(500m)을 가볍게(?)넘고 나니 작은 언덕 10여개나 되는 낙타등 고개 30여km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체 사이클 코스중에 개인적으로는 이 구간을 제일 좋아하는데 적당한 업다운과 한손에 잡힐듯한 백록담,

우거진 숲 사이로 가끔 보이는 서귀포 앞바다... 도로가 한적해서 사색을 하며 라이딩을 해도 되고,

전체적으로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구간입니다.

이후는 다운힐 구간입니다.

재작년 이 구간에서 대형 사고(2명 1년가까이 병원생활했다 전해짐)가 난 이야기를 들은터라

약간 긴장도 되고 어께와 손에 힘이 들어가네요. 사고처리(보상문제)로 작년은 제주대회 취소됨.

비에 노면도 젖은데다 체력도 소모되어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잡으며 안전 위주로 10여km를 무사히 내려왔습니다.

이곳(오설록인근) 주변도 경치가 멋진 곳인데 워낙 속도가 나다보니 경치감상은 언감생심.

마음 같아선 천천히 내려오면서 아래 펼쳐진 경치를 조망하고 싶은데 경기인지라 생각으로만 위안을 삼고 후일을 기약합니다.

마지막 골인 지점을 앞두고는 모슬포 중심가를 가로 지르는데 제법 갤러리들의 환호가 이어져

힘도 나고 기분좋게 사이클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런(42.2km 5:28:30) 운진항-송악산 왕복 5회전

 

사이클 후 런으로 전환하려 양말을 신는데 갑자기 오른쪽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나고 종아리에 쥐가 나 움직일 수가 없네요.

옆사람의 도움으로 쥐나는 부분은 풀었는데 허벅지의 경련은 계속되는게 양말을 신을 수가 없습니다.

한동안 주무르다 간신히 양말을 신고 스트레칭을 하고 나니 한결 나아집니다.

 

“편도4.2km 5회전이라... 이제 정말 시작이로구나..”

1,2,3회전..., 갈수록 시간은 점점 더 걸렸으나 3회전까지는 생각보다 힘을 덜 들이고 달릴 수 있었는데

4회전부터는 종아리와 허벅지에 쥐가 나서 좀처럼 달리기가 힘들어지네요..

마치 4회전부터는 비도 오고 날씨도 덮지 않아 달리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는데 발이 떨어지질 않으니 아쉬움만 커갑니다.

고관절주위 통증 치료로 장거리 연습을 못한 것이 여실히 드러나고 새삼 정직한 운동임을 깨닫게 됩니다.

런을 위해 파워젤 4개, 아미노바이탈 2개를 준비했는데 세 개째 먹는 순간 구토가 나며 먹을 수가 없더라고요...

잠시 걸으며 “아.. 이대로 5회전까지 마칠 수 있을까?”

보급소에서 콜라를 마시는데도 넘어가질 않네요..

달릴려고 하면 쥐가 오고 체력을 끌어 올리려 이것저것 먹으면 구토가 나서 난감한 상황이었습니다.

물병을 받아 조금씩 마시고 뛰걷뛰걷하며 간신히 4회전을 마무리 하게 됩니다.

 

골인지점 근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제주클럽 회원들이 몇 번 쉬었다 가라고 하는걸

감사 인사만 하고 지나쳤는데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의자에 털썩 앉아 있으니 된장 냉국을 권하더군요.

한모금 마시는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입니다

미역,오이,야채... 에 된장을 풀었는데 이 맛이 끝내줍니다.

된장 냉국 두 사발을 벌컥 들이키고 휴식을 취하니 체력도 돌아오고 한결 나아지네요.

시간을 보니 잘 하면 오후 6시 30분에는 골인할 것 같습니다.

다시 힘을 내서 마지막 회전 출발!

그런데 첫 보급소까지는 무난하게 갔는데 이후 종아리 쥐 때문에 달릴 수가 없네요.

체력은 가능한데... 훈련부족을 실감하며 걸어서 마치기로 작전 변경..

이번 대회 13시간 30분에 마치는 것으로 목표를 세웠는데 걸어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 참을 걸으며 주변을 보니 달릴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네요.

알뜨르비행장, 비행기 격납고, 방공호, 대공포진지, 4.3항쟁 기념탑...

일제 강점기와 6.25라는 한국 현대사에 잊혀질 수 없는 비극의 현장을 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가 한눈에 들어오고 송악산에 바라보는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한라산은

제주의 제 1경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슬픈 역사유적지가 관광지가 되고 지금 이곳에서 기진맥진한 몸으로 경기를 하고 있는데

마음은 한결 평화롭고 숙연해지네요..

알고보니 모슬포는 과거 유배와 항쟁의 땅 이었다네요. 추사 김정희가 9년여 동안 대정읍에서 유배생활을 했고,

1901년 천주교계 교폐에 저항해 일어난 ‘이재수 난’도 이곳이 발원지랍니다.

모슬포(모레가 있는 포구)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슬픈 역사를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골인 지점을 앞두고 가족, 직장동료, 동호인... 여러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여보, 무리하지 말고 즐기며 재미있게 하고 와요~”

“박교감님, 짱이세요. 꼭 완주하고 오세요~”

“형님, 함께 갔어야 하는데.. 파이팅하세요~”

.

.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입니다.

두 팔을 번쩍 들고 골인 지점을 통과하고 나니 해냈다는 기쁨도 잠시 왠지 허무하고 “왜 이걸?” 자문하게 되네요.

 

 

이번 대회는 적절한 기온, 구름, 비, 바람약간...

20여번 삼종대회 참가하는 동안 조건이 가장 좋았던 대회였던 것 같습니다.

기록 갱신하기 좋은 환경에도 불구 평년작 했습니다..

바꿈터 합산기록  1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