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닷컴 입력 : 2017.06.28 03:06 민학주 기자
[1947년 보스턴마라톤 우승 서윤복]
손기정의 베를린 金 보며 꿈 키워… 제 1회 조선일보 단축마라톤 우승
손기정 감독·남승룡과 보스턴 行… 동양인 첫 우승에 美 언론들 "기적"
김구 선생이 '足覇天下' 휘호 선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은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서군이 부럽다.
태극기를 달고 뛸 수 있는 그는 얼마나 자랑스러운 존재인가.' 백범(白凡) 김구는 '서군'에게 '족패천하(足覇天下·
발로 천하를 제패하다)'란 휘호를 선물했다.
해방은 됐으나 대한민국 정부는 수립되지 않았던 1947년의 4월 19일. 헐벗고 굶주리고 정치적 혼란에 휩싸여 있던
한반도는 166㎝, 56㎏의 '작은 거인'이 전한 승전보에 감동했다. 세계 4대 마라톤으로 꼽히는 보스턴 마라톤에서
24세 청년 서윤복이 우승한 것이다.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운 사건이었다. 그는 가슴에 태극기와 'KOREA'란
글자를 새기고 국제대회에서 우승한 최초의 마라토너였다. 보스턴 마라톤 사상 최초의 동양인 우승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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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서윤복(94) 선생이 2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1923년 서울에서 태어난 서윤복은 1936년 베를린에서 손기정이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보며 꿈을 키웠다. 훗날 두 사람의 인연은 한국 마라톤의 영광으로 이어진다. 손기정의 올림픽 우승 10년을 기념해 1946년
열린 '제1회 조선일보 단축마라톤대회' 우승자가 바로 서윤복이었다. 대회 당시 손기정은 참가 선수들 앞에서 직접 코스를 설명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열린 제51회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서윤복이 거둔 우승은 현지 언론 표현대로 '기적'이었다. 서윤복은 손기정,
남승룡과 함께 보스턴 대회 초청을 받았지만 여행 경비가 없어 발을 굴렀다. 결국 미 군정의 도움으로 군용기를 타고 김포공항을 출발
했다. 하와이,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5일 만에 보스턴에 도착했다. 손기정이 감독, 서윤복과 남승룡이 주자였다.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단신의 서윤복을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서윤복은 생전 "(보스턴 마라톤) 25㎞ 지점에서 갑자기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윤복아, 뛰어라, 우승은 틀림없다. 조국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라'라는 손기정 선배의 말이었다. 순간, 이 말이
나에게는 뻗치던 힘을 더 강하게 해주었다"고 했다. 그는 언덕을 내려가다 난데없이 뛰어나온 개에 놀라 넘어져 상처를 입었지만
다시 일어나 달려 2시간25분39초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 그는 "한국의 완전 독립을 염원하는 동포들에
게 나의 승리를 선물로 바친다. 나의 우승은 1910년 이래 일본의 지배를 받아왔고 4000년 역사에 빛나는 한국의 완전 독립을 염원하는
3000만 민족에게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는 소감을 밝혔다.
미국 교포 사회를 순회하고 귀국한 그에게 이승만 박사는 "2시간여 마라톤이 나의 30년 독립운동보다 더 널리 세계에 우리 민족을
알렸다"고 치하했다.
그는 1948년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뒤 이듬해 은퇴했다. 이후 모교인 숭문중학교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국가대표 마라톤 감독을
지냈다. 대한육상연맹 부회장, 대한체육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1961년부터 17년간 서울시립운동장장(長)을 맡기도 했다. 2013년에
는 대한체 육회 스포츠 영웅에 선정됐다. 양재성 전 육상연맹 부회장은 "선생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치밀했지만 후배들이 모두
좋아하는 아량을 지닌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장례는 대한체육회장(葬)으로 치러진다. 유족으로는 부인 용영자씨와 아들 서승국, 딸 서정화, 서정실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2호, 발인은 29일 오전 8시30분. (02)3010-2292